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오후에
아침에 마음샘에 들렸다가 다시 걸음을 옮겨서 경기도 뇌병변 장애인 인권협회였던 곳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낯익은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권영욱 팀장님, 신간사, 김간사, 그리고 회장님과 그녀의 활동보조인이자 협력자인 임팀장님까지...
그리고 식사를 권한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제안을 거절하고 그 곳을 빠져 나와서 병점역광장으로 갔다.
그리고 그러기 전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하나 사서 그 광장에서 먹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오래 전에, 아니 그리 오래 전도 아니지만 그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컵라면을 사주거나 기도를 해 주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훨씬 전에 나는 한 1년 반을 그 곳 정자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사람들을 돌본 적이 있었고 쉬는 틈틈이 노숙인들과 일용직 근로자들 중 일거리가 없어서 일을 못 나간 사람들과 같이 막걸리를 마시고 순대와 튀김, 떡볶이 등을 먹으면서 수염할아버님, 홍제수 씨, 문덕성 씨,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교를 하거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들 중 아무도 없다.
그리고 생명이 위태로울 것 같은 두 사람에게 대세를 베푼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새벽 늦은 시간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어 119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신원불상이라고 하여 이송하기를 거절했고 나는 돈이 없어서 그를 돕다가 그가 일어나서 집으로 비틀비틀 가는 것을 보고 집까지 걸어 들어온 적이 있다.
지금은 정자도 없어지고 사람들은 가끔 취객들을 제외하고는 그 곳에서 술을 마시거나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이 없으며 지금은 가설무대가 세워져 있고 매주 화요일 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곳에서 점심식사를 교회와 사회단체에서 배식한다.
노숙인들도 너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당장은 굶어 죽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사회단체와 종교단체에서는 그들에게 침낭과 담요, 옷가지 간식거 등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다가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그 곳을 찾는다.
성호경을 바치고 식사 전 기도를 바치는데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걸어서 병점4거리까지 가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추가) 당시의 교황님은 베네딕토 16세였고 추기경님은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과 병점을 오가며 전교와 봉사와 나눔을 이렇듯이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크고 작은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이 순수한 열정이었는가 저 자신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객기를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요즘 저는 가끔씩 돌이켜 보며 열정이 지나치지는 않았는가를 반성하여 봅니다. 사람은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저야 한다는 이야기는 문득 떠오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