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금 교회가 세상을 책임질 수가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

"한 천주교신자" 윤 사도 요한 2019. 9. 24. 13:36

어제 어느 모임에서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하던 중 나의 차례가 와서 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저의 소회를 밝힐 수가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그렇게 열심히 전교도 봉사도 그리고 교우관계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털어 놓고 나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조금 냉정하고도 매정한 시각에서, 어찌 보면 아주 비판적이고도 비관론적인 입장에서 를 보고 한 말입니다.

지금 세상을 교회가 책임질 수가 있을까요...?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이 존재하고 신앙의 자유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도 있으며 아직도 복음의 빛과 세상 곳곳에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싹트지 않고 있는 곳이 존재합니다.

종교는 처음에는 [베품]에서 시작하고 그 다음 성장하게 되면 [관리]의 단계로 접어든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에서 홍건적을 표현할 때 이야기한 말입니다. 물론 절대자를 믿는 종교와 그러한 종교는 비교될 수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덧붙여서 말하였습니다. "제가 예전처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적고 또 세상의 교회가, 아니 종교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몇 년전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시대처럼 같이 소유하고 나누고 말씀을 전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때 저는 동의하였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저도 알고 있듯이 간사한 것이어서 모든 것을 내놓고 공동체, 특히 교회에 헌신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리라는 신앙인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기도를 드릴 때 "현새의 것(노력, 기도, 제물)을 하고 이야기하고 나서 "다가올 세상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제가 그렇다면 왜 신앙인이 되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성직자가 되거나 수도자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사실 저는 건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럴 자세는 되어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바라지도 않는데 그런다는 것은 저의 "책임질 수 없는" 그릇된 열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책임질 수 있는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과 열정이 책임질 수 없는 것이 된다며 객기이고 억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훌륭하고 건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좋은 하루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