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들

미친 판사 여상규, 청문회 스타 노무현, 그리고 인동초 김대중 내가 처음 운동권을 접하였을 때

"한 천주교신자" 윤 사도 요한 2019. 11. 27. 10:07

한번은 노무현 의원이 우리 연세에 특강하러 온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청문회 스타였고 이철, 노무현, 장석하의 세 명은 우리가 익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른 바 삼허 중에 (괴변의 한계를 허문) 허문도씨와 허삼수, 허화평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도서관 앞 민주광장을 가득 학생들이 모였고 나는 노무현을 직접 바라보고 그의 달변을 들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그는 민정당(민주정의당의 약칭)을 육법당(서울법대 출신들과 육사 출신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아주 맹렬히 비난하였다.

그 뒤 나는 그의 정열이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하였는가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도 학생들도 노태우 정권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보라매 공원의 집회 때 김대중 평화민주당 대표를 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학생운동과 선량한 학생들을 노태우 정권은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곁에 홍위병으로 전경과 백골단, 또한 부패재벌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그 두 사람(김대중, 노무현)의 종말이 결코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오늘,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엇나간 5공시절, 6공시절의 충정심을 보도한 글을 읽고 재야와 운동권에서 왜 그렇게 그를 미친 판사라고 물렀는지르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아무 가책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인고와 어둠과 죽음의 세월을 산 진도간첩단 사건의 이야기는 우리를 다시금 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 안 되는가를 생각나게 한다. 역사의 심판은 매우 준엄하다. 이제 우리는 그 암울하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단지 그들의 첤권이 아닌, 이른 바 돌주먹(?)들의 무서움에서 해방되었음을 느끼며 안도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이한열, 박종철, 그리고 김세진, 이재호, 전태일, 그리고 노수석, 이철규, 강경대 들의 이른 바 민주열사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있었음을 안다. 우리는 이제 민주화된 세상에서 대통령을 비난하고 탄핵운운해도 당당하게 나의 소신입네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꾸 느낀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 열사들의 삶에 도움과 고마움을 표할 수가 있을까? 나의 종씨 윤상원이 광주에서 다른 사람들과 흘린 피의 보상도 아직 다 하지 못하였는데, 이 아침 이른 바 옛날에 들었던 미친 판사 여상규씨의 적나라한 악행을 들으면서 나는 격세지감을 느끼며 아직도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어리석고 무책임한 행동에 놀라게 된다. 이제 겨울이다. 군자는 매화나 국화와 같이 어려운 시절에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감히 물어보고 싶다.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