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주교신자" 윤 사도 요한 2019. 11. 28. 09:27

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어제 퇴근하는 길에 수원역에 들려서 사람들 사이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애인 노인 한분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다가가서 율무차를 내밀었고 간단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추우시죠? 배식시간도 다가오는데..."
그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앞에 있는 보행기가 보였습니다.

나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사람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영호형, 여기서 뭐해?"
대화는 중단이 되었고 저는 한숨을 쉬며 성호경을 바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병점역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나서 그곳에서 내려서 간단히 간이음식점에서 만두와 어묵을 먹고 버스를 타고 나서 화성시 근로자 복지관에 가서 홍영표 의원이 특강을 들었습니다. 저는 다소 국회에 대하여 실망하였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역시 홍영표 의원은 기대 이상으로 눌변이고 달변으로서 청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질문도 하고 말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저는 누님집으로 가서 간단히 1박을 하고 나서 아침에 다시 출근을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한번 더 그곳에 가보니 그 노인은 그 자리에 보행기를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아파서 그에게 커피를 내밀며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며 성호경을 바치고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일어서서 가슴을 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대합실에 가는 도중 이불을 뒤짚어 마치 초인처럼 걸친 한 사람과 한 여인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숙인들이었고 여인은 제가 전에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합실에서 성호경을 바치고 기도를 하고 나서 조금 의기소침한 마음에 다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어서 저는 버스를 타고 직장이 있는 마도 은장고개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주님의 기도, 성모송과 영광송을 바치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가장 가슴이 아프고 괴로운 일인 것입니다. 심지어 그가 아무리 신앙이 강하더라도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 자주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결국 사람을 단련시키는 구실도 합니다. 인내는 순종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여기에서 생긴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받는 사람이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의 상처는 치료되어야 하고 감싸져야 하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생각해 보니 저도 많은 고통과 외로움과 시련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며 참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주 성체조배를 해서 지금은 감실 앞에서 무릎을 꿇기 전에 성호경과 사도신경, 주모송을 바치기 전에 심호흡을 하는 것이 일상화가 되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와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하체가 부실하여졌습니다. 그래서 무릎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긴 성체조배든 짧은 성체조배든 그러한 기도와 무릎꿇기를 거의 자주 합니다. 그리고 맨 앞의 자리에서 고개를 들거나 숙이며 성호경을 바치고 청원기도와 감사기도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저를 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허나 그러한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작은 사랑이나마 실천하지 않는다면...! 오늘 저는 다시금 한숨을 쉬고 그것에 대하여 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2019.11.28.목.아침.

 화성 서남부IL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