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상바오로후원회 소식 2019.11.제219호
"사랑 많이 받고 갑니다"
김대우(모세) 신부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윤영선씨가 1975년에 부른 "얼굴"이란 노랫말이 떠오르는 가을입니다.
매년 시월이 되면, 저는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무심코 후원회원님의 얼굴을 그립니다. 그렇게 그리고 그리다 보면 어느새 시월의 마지막 주일이 오고, 아련한 얼굴들은 이곳 신학교 토마스홀(대강당)을 가득 채웁니다. 신학교 공동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지난 팔월에 저는 나태주 시인의 저자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시인은 앞자리에 앉은 저에게 어떻게 왔냐고 물어서, "보고싶다"라는 시가 너무 좋아서 왔다고 답했습니다. 시인은 환히 웃더군요. 그 시의 한 대목으 ㄹ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보고 싶다, 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차고 가득 차면 문득 너는 내 앞에 나타나고 어둠 속에 촛불 켜지듯 너는 내 앞에 와서 웃고..."
저는 시인에게 "시구절 중 '너'라는 대상이 누구를 지칭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너'의 지칭 대상은 질문을 하는 '제 자신'일 수도 있고 아내와 남편, 즉 사랑는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를 음미하다 보니, "너"라는 대상은 저에게 하느님이셨습니다. 이 시가 왜 공감이 가고 머릿속을 맴돌게 했는지 알게 됩니다.
저의 죄스럽고 나약한 본성이 드러날 때, 예기치 못한 시련들이 밀려올 때, 그분을 보고 싶고, 만나서 묻고 청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두운 침묵속에서 가려져 계셨기에 그 장막을 거두어 달라고 소리쳐댈 뿐이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현존을 찾가는 노력들이 가슴에 차고 가득 차면, 문득 그분은 내 앞에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생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 각자가 지닌 갈망의 촛불을 켜드리면 그분은 내 앞에서 웃으십니다.
사랑해서 잊지 못하는 후원회원님, 여러분은 신학생의 얼굴을 그리고 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여러분들의 얼굴을 그리고 그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월의 마지막 주일에 만났습니다. 그리고 함께 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하느님께서는 우리 앞에 얼굴을 드러내셨습니다. 지난 피정을 마친 한교우분이 제게 "사랑 많이 받고 갑니다"라고 작별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저는 이 지면을 통해 이렇게게 말해야 합니다. "후원회원님, 저희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