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화요일.
찬미 예수님. 아멘. 반갑습니다. 오늘은 오는 길에 한 노숙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왠지 낯이 익었습니다. 제가 1997년 회사를 관두고 서울역 등지에서 전교와 캠페인을 하였을 때 저에게 뼈아픈 충고를 하였던 사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때 저는 IMF 경제위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가진 것을 다 팔고 그리고 짐과 신용카드만을 챙기고 나서 서강대학교 고시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였고 일본 전교에 뜻이 있어서 어느 어학원에서 잠시 알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리고 경제인들이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마음놓고 살아도 된다는 말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야기를 하며 전단지와 팜플릿으로 그것을 반박하며 물신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거스르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시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는 아직 지금처럼 경제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한보그룹도 사실 부도가 났었고 저는 가만히 있으면 월급이나 받고 그리고 제 몫만 챙기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하였고 그 결과로 그룹 비서실에서 당진의 제철소로 쫓겨 내려 갔습니다. 그렇다고 전교와 캠페인을 포기할 제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였습니다. "무엇으로 먹고 살려고 그러느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 생각이 있었고 신학공부를 하기 위하여 당시 감리교신학대학이 있던 독립문 근처와 총신대까지 찾아가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자신의 과거의 생활을 보고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말은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사실 바리사이였고 사두가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오래전에 마음먹었고 자주 전교의 도구로 쓰려고 성화 사진을 사려고 들렸던 명동에 가서 천주교 입교를 결정하고 나서 다시금 전교와 캠페인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동의 프란치스코 형제회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프란치스코 형제회(작은형제회)에 입교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명문대 출신의 젊은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들도 만류하였습니다. "형제님, 삼년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저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어 형제회에 입교하려고 할 때 그때도 여러분은 삼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사례를 하고 나와서 저는 다시 서울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그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 형제는 저를 불러서 충고하였습니다.
"다 맞는 소리이기는 한데 그런 식으로 재앙이 있고 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어렵습니다. 차라리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좋은 일이 있는지 어떤 축복이 있는지를 잘 알려서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그와 생각이 달랐지만 어쨌든 고맙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뒤 어학원에서 받는 돈이나 그 밖의 알바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미 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 1년 과정에 입학시험을 본 상태였으나 저는 결국 아는 사람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가족들과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곳에서 다시 예비신자교리를 마치시고 그 다음에 다시 기회를 잡도록 하십시오...!" 저는 그 말을 따랐고 집에 와서 누님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저는 다시 교리공부를 마치고 세례를 받고 병점성당에 다니며 각처에서 전교와 캠페인을 이어갔습니다. 가진 돈들 중 많은 부분을 써버렸고 카드빚까지 200여만원 상당의 빚을 져서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것을 갚아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IMF 경제위기가 시작이 되었고 저는 지쳐서 녹초가 되었습니다. 결국 쉬기위하여 병원에 입원하였고 의사들은 병명을 알 수가 없다며 전전긍긍하였으나 한참 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많이 슬퍼하였다는 것과 전교와 캠페인을 하면서 돈을 많이 썼다는 말에 조울증을 진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 저는 잠시 몇 개월을 성당에 나가기 못하고 퇴원해서도 끙끙 앓았습니다.
생각컨데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 세속의 가치로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름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당시의 상황으로 제가 옳은 일을 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친 것과 미친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하루 되십시오.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