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0입니다...!
70년생인 나는 개띠로 올해 만으로 50번째 생일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51세 곧 52세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생각을 해 보니 진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랑할 것이라고는 책을 많이 읽은 것과 봉사를 열심히 한 것 두 가지입니다.
물론 한 때는 천상효자 소리를 들었고 대학도 좋은 곳을 나왔습니다.
책은 한 10,300권 내지 10,800권을 읽은 것 같고 이 중에 전공서적, 사회과학 도서, 철학, 역사서, 경제학, 인문학, 어학, 그리고 기초과학책, 전술학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나중에는 종교서적까지 탐독을 하였습니다.
물론 교과서나 학습서, 무협지, 그리고 상식책까지 읽었습니다.
요즘은 책을 거의 읽지가 않고 여기 저기서 오는 소식지나 우편물을 받아 봅니다.
그 모든 양이 1년이면 또 상당수에 달합니다.
봉사도 열심히 하여 사람들이 지나치게 겸손하다며 혹시 과거에 저지른 죄 때문에 보속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조금 우스운 일이기는 합니다. 교회, 아니 성당에 다닐 때부터 저는 아니 그 이전에도 저는 착한 편에 속하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선한 편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저는 그러한 평판을 순탄한 인생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낍니다. 저의 집안은 초등학교 때 가세가 기울면서 아프신 아버지 때문에 이사를 여러번 다녀야 하였습니다.
군생활은 10개월 정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의가사 전역을 하였는데 집안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입대를 하려고 하였는데 그 때는 장교나 부사관으로 입영할 자격이 되었고 해군 장교 시험에 다 합격하여 진해의 해군기지로 내려 가면 되었는데 (아마 군필자였으니 훈련도 그렇게 심하게 받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덜컥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저는 입영을 포기히여야 했습니다. 나중에 막노동을 하며 전교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가 다시 육군기술하사관(공조냉동기계 자격증이 있어서)으로 지원하려고 했는데 병무청의 모병관의 만류로 이 일을 수포로 돌아갔고 저는 이에 대하여 국민권익위원회에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합니다) 민원을 제기하였으나 역시 반려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 뒤 저는 전교와 봉사에 힘을 쏟고 이어서 천주교로 개종, 아니 교회를 옮겼다는 말을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 뒤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울과 평택을 가고 주말과 휴일에는 종교 활동을 합니다. 공부도 계속하여 한국사회과학 도서관과 태안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고 얼마전까지 저는 사이버대학의 2학년 1학기 과정을 공부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제가 조금이나마 교회와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휴학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열정을 품고 있으나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 열정도 감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보다 젊은 사람들이 활동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이 글을 쓰면서 앞서 말한 두 가지 봉사와 전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여 봅니다. 나이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은 여가를 즐기는 일 말고는 봉사와 독서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아니,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닌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신앙인들의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일하고 봉사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