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모든 것이시니...!

삼위일체 교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한 천주교신자" 윤 사도 요한 2021. 8. 8. 22:54

얼마 전 교황님이 말씀하셨다 "교회는 물려주거나 세습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공감한다. 만일 교회가 물건이거나 재산이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들의 공동체이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인도받아서 운영되는 거룩한 집합체이며 개개인의 각자의 모습으로 유형, 무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는 각자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직분과 위치에 따라 나을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이 아주 평등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도요 어떤 이는 예언자요, 어떤 이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요, 어떤 이는 방언을 즉 신령한 언어들을 말하는 사람인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누구나 잘 할 수도 그리고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갖가지 언어들을 말하거나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여 할 수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과연 교회 내에서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가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아니라고 본다.

 

성경에서는 예언하는 능력을 구하라고 하였지만 예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살면 잘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점장이처럼 몇 날 몇 시에 가면 귀인을 만나고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하면 횡액을 당하고 하는 이야기를 말하며 어떤 물건이 이득이 되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불교에서 스님들이 수행을 하다 보면 마구니에 든다고 한다. 그것은 오랜 수행을 거치면 어떤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보이고 운명이 점쳐지고 행운과 앞으로 있을 일들을 알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갑자기 자신이 아주 잘난 사람인 줄 알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큰스님들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한결 같이 하시는 큰스님들의 말씀이 신경을 쓰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더 수행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수행자들이 그 과정에서 돈과 여자와 명예와 교만에 빠져서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환속을 하게 되고 어느날 그 능력이 다하면 스님 노릇은 못하고 그저 평범한 속인이 되어 후회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사람은 곧 큰스님의 길로 접어든다고 하니 참고하여 볼 일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요는 기적이 아니라 표징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처의 마음을 따르는 자비의 불심을 갖는 것이라고 불교에서는 말을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교에서는? 간단하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만일 10분 뒤 20분 뒤 어떤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안다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면 척척 대비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 나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고가 날 것을 미리 알면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면 어떻게 안심하고 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내 말이 맞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각설하고 만일 사람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 송두리째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는 어릿광대나 다름이 없는 것이, 만일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등급이 있다거나 아니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도리와 사고가 경직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오웅진 신부님의 입장이 맞다고 보여진다.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평등한 것처럼 사람도 모두가 평등한 존재라는 말이 맞고 또한 그럼에도 교회와 세상에서 직분에 따라 각자가 맞은 일이 다르다는 말이 또한 맞는 것이다. 그래서 다 왕일 수도 없고 다 사제일 수도 없고 다 예언자일 수도 없다. 그러나 다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이 정답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째야 하는가 교회와 세상에서 각자의 정해진 위치에 따라 봉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처신하고 나설 때 나서고 물러설 때 물러서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소명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깨닫기 위해서는 훈련과 연단이 필요하며 솔직함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앞서 가야 할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도 또 자신의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원망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런 과정에 접어들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것은 완전체로서의 인간임을 아는 동시에 어쩌면 유한자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양면성을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