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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자매님이...-외계인과 미스터 두, 그리고 1942와 怒이카리신변잡기들 2019. 10. 28. 11:43
나에게 메신저로 카톡 친구를 추천하여 달라고 하며 같이 골프나 치자고 이야기를 해 왔다.
물론 나는 골프를 못 친다. 그리고 잘하는 것은 잡기로 오목이나 장기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오락실 시절의 스타였다. 왜 그런고 하니, 너무 잘 해서 오락실에 가면 주구장창 앉아서 두세 시간을 게임을 하고 있으니 주인이 나중에 뒤에서 열심히 빗질을 하여 (빨리 나가달라고) 나는 한 게임을 마치면 곧 바로 집으로 가고는 하였다.
1942라는 일본판 게임이 있었다. 이 게임을 나는 한 대의 비행기도 잃지 않고 마지막 왕까지 헤치웠다. 그러면 그 때 영어로 자막이 뜨고는 했다.
내용인즉 "우리는 무조건 항복한다. 보너스 점수 1000만...... 캅콘의 다음 게임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스터 두라는 게임에서 나는 타임머신을 거는 방법을 알고 다이아먼드까지 게임 당 두세 개 정도는 따먹어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나오면 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1943이라는 게임(아마 1942의 후속)은 2백만 점이나 3백만 점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항공모함에서 가까워질 즈음 죽고 끝나기는 했는데 나의 지원군이 될 만한 파트너로 참여하는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뽀빠이란 게임에서는 마녀가 나오고 컴퓨터가 미쳐갈 즈음 즉 보통 10판을 넘기면 음악도 브루터스도 빨라지고 시금치를 먹어도 효과가 얼마 없어지는데 A, B, C, D, E판까지 가야지 나는 모든 게임을 끝내고 내가 져서 게임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른 바 怒IKARI 게임(흔히 람보 게임으로 불린)에서도 나는 단 한 마리만 희생시키면서 (사실 그 한 마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그렇게 짜여 있었다) 카와사키라는 장군 앞까지 진군하고 100만 점의 보너스를 타고 게임이 끝나고는 하였다. 그리고 나서 대학에 가서는 별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독서에 더욱 마음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동생인 정민이도 게임을 잘 하였다. 그러나 나만큼은 아니었고 나는 동생과 같이 고2 때, 고3 때 머리를 식히려고 게임을 하러 시내에 나왔다. 그러면 역시 주인이 빗질을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졌고 나는 동생과 같이 집으로 늦게 돌아갔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고기를 잡으로 냇가에 가서 미꾸라지, 양수라지, 그리고 피라미, 붕어 등을 잡고는 하였다. 돌이켜 보면 오늘 그 자매님은 나의 유희본능을 깨우쳐 주었다. 대학 시절까지 담배도 그리고 술도 (제사 때가 아니면 음복한다고 장남이자 장손이기에 한 잔 한 것 빼고는 마신 적이 없는 술을) 그리고 고스톱도 안 쳤고 나중에 그것을 즐기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였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인간이 역시 놀이의 인간, 유희의 인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는 가끔씩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글을 실으면서 그 기분을 만끽한다. 지금도 낚시는 잘 하지는 못하고 자주 하지도 않지만 좋아한다. 오래전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취미와 특기, 습관을 통하여 무엇을 느끼고 기억하고 회상하는가 그리고 계획하는가 생각하여 볼 일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이 나중에 그 냇가에 와서 추억하듯 우리는 무엇을 다시 그 장소에서 추억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는, 아니 그렇게 사는 존재들이 아닐까 한다. 이제 50이 되어서 생각을 해보니 불현듯이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보다 아직도 다른 놀이를 즐기는 시간이 남아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틈틈히 적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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