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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정동운 형제여, 기억하십니까...?나의 이야기 2017. 3. 20. 04:55
그리운 정동운 형제여,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만나서 같이 교회와 세상의 일을 이야기하 지도 어언 2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가톨릭교회로 교회를 옮겼고 (정동운 형제에게는 천주교로 돌아가는 것이란 말과 다름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했지요) 지금도 천주교회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 10여 년, 천주교 20년의 세월을 보내다 보니 많은 생각과 감회가 떠 오릅니다.
저는 어머니를 잃고 형제에게 그 감흥을 적어 보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한보그룹에 입사하여 그럭저럭 한두 달을 보내다가 다시 그 과정에서도 했었던 일이지만 전교의 길로 나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IMF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알아서 전교와 캠페인을 하였던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과정에서 악마에게 시달리기도 하였던 것 같고 (어찌 보면 단순한 경련이 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명동성당 폭풍우 사건이나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상 사건이라든가 제대에서 웅웅 소리가 난 것, 그리고 그 밖의 제가 형제에게 학창시절과 어렸을 적에 일어났던 여러 이상한 환시와 경험들에 바추어 볼 때 과연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이야기를 제 자신도 궁금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운 정동운 형제여!
저는 드디어 누님과 일전을 벌이고 집을 나와서 서강대학교 앞에 있던 고시촌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목회자가 될 수가 있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 당시 독립문 근처에 있는 감리교신학대학에 들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 기준에 보면 저는 세상을 구하지도 못했고 저의 어머니나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총신대에 들려서 (여기까지 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었고 저는 길을 잘못 들어서 산을 타넘고 가시덤불에 찔려 가며 그 곳에 가야 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 본 뒤 다시금 명동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던 명동성당의 지하성당의 고해소에 들어가서 제가 죄를 지은 것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남다른 방식으로 입교절차를 밟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돌출행동에 놀란 프랑스신부님은 저에게 한 수녀님을 소개시켜 주었고 저는 서강대학교에 있는 신학대학의 전신인 수도자대학원에 들어가기로 하고 암침부터 저녁까지 수도권 일대를 전교하고 캠페인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중에는 대전까지 내려갔었고 전주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뒤의 일들을 여기에 실린 내용과 같습니다.
유럽은 통합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뒤의 일들을 생각하며 정동운 형제가 저를 보고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사기를 당하여 빈털터리가 되기도 하고 카드빚을 지기도 하였으며 파산직전까지 내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누님들의 오해로 정신병원에 40여일 동안 갇혀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저에게 조울증의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도 다소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 정동운 형제를 만났을 때의 그 형제애를 기억하며 사회와 가정, 성당의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르단강의 물로 세례를 받았던 것을 알림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천주교로 떠나기 한 서너달 전 저는 이웃의 송산감리교회에서 진항섭 목사님께서 세례를 베푼 후 그 물이 요르단가에서 직접 떠온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천주교로 가서 세례를 받고 난 후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는데 여기에 다 싣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같이 느끼고 경험한 것이 상당수에 달합니다.
물론 제가 죽은 사람을 살렸다거나 기적처럼 남들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일은 저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이 논란거리로 삼을 이야기는 많으며 그 중 몇은 여기에 싣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마흔여섯,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여덟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제 삶의 여정도 지금처럼 순탄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며 살도록 하려 합니다.
나중에 형제를 만나게 되면 천주교식으로 싸구려 포도주라도 한 잔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형제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건강하시고 복된 나날들 되십시오...!
형제와 제가 꿈꾸던 세상은 달랐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더욱 훌륭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평화를 빌며,,,
2017년 3월 20일 월요일 사순
정동운 형제의 벗
승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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