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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년 전 교황청대사관에서
    나의 이야기 2017. 2. 11. 11:42

      1996년 나는 원래 다른 사람들과 내 자신과 약속한 대로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된 것이 아니고 오랜 과정과 학습, 새로운 다짐을 동반한 것이기에 시간이 그 만큼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먼저 전교(선교)를 통하여 내 자신의 결심을 굳히기로 작정하였다. 하지만 개신교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우선 수도권의 지하철역 밖에서 내가 손수 만든 팜플릿과 쵸컬릿, 쵸코파이, 사탕과 과자들을 나누어 주며 이른 바 전도를 하였다. 그리고 찬송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사람들에게 교회에 다닐 것과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을 권면하였다. 그리고 다시 회사에 입사하며서도 명동성당에 드려서 카드 성화를 구임하여 그 뒷면에 (대부분 아기천사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성경 구절과 "행복하십니까?" 하는 구절들을 적어서 지하철 안에서 나누어 주며 선교를 하였다.

      회사를 그만 둔 뒤 나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집안사람들과 절연할 것을 각오하고 집을 나섰다. 모든 것을 두고 달랑 등산가방 하나만 들고 서울의 서강대 입구의 고시촌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선교를 하면서 병동성당에 가서 입교를 하였다. 그 전에 나는 개신교의 감리교신학대학과 총신대를 들려서 내가 전도사나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있는가를 알아 보았다. 그런데 나는 내 자신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이미 감리교 교단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그것에 대하여 나는 영문으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나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 즉 내가 느낀 바와 확신, 그리고 내가 어째서 천주교를 선택하였는가, 그리고 나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과 도식에 관한 그림까지 그려가며 바티칸과 백악관에 국제우편으로 발송하고 복사본을 명동의 신부님 대기실에 가져다 놓고 나서 여전히 아침 저녁으로 수도권과 지방, 정확히는 전주와 대전 등지에 가서 전교와 캠페인을 하였다. 그리고 그 때 교황청대사관에 처음 들렸다.

      찾아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방해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 간 나는 그 곳의 직원들과 신부님에게 나의 이야기를 영어로 설명하고 바티칸까지의 여정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에 대하여 꼼꼼히 물어 보았다. 그 곳의 신부는 역시 영어로 "좀 많이 듭니다." 라고 친절히 설명하였고 수녀님은 웃어 보였다. 나의 수중에는 그 만한 돈이 통장에 있었고 신용카드 한도에도 넉넉한 돈이 있었으나 아직 예비신자이기 때문에 나는 세례를 받고 나서 가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서강대학교의 신학대학원의 전신인 수도자대학원 1년 과정을 신청하고 공부를 하며 전교를 계속하였다. 그 때 나는 이미 세상이 곧 어수선해지고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겪을 것과 환경과 에너지 문제가 심해지고 곧곧에 전쟁과 기근이 만연할 것을 예감하고 전교와 캠페인을 병행하였다.

      그 뒤 나는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리고 몸도 안 좋아졌기에 입원을 하고 나서 다시 수원교구 병점성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취업을 다시하고 나서 바티칸에 나의 근황과 교회에 대한 생각, 특히 새천년의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나의 견해와 의견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당시에 나는 내가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을 TV로 지켜 보았고 그의 뒤를 이어 요세프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에 등극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 봉사와 집단적 봉사를 계속하였다. 이어서 그 과정에서 나와 바티칸, 그리고 교황청 대사관에는 수많은 편지들이 오고 갔다. 이 일은 그 때의 어느 하루의 일과를 적은 것이다.

     

      아침에 교황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챌시오 집사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교황청 대사관을 방문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약간의 다과, 즉 차와 음료수, 과자 등을 준비해 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후 충정로역에서 환승하면서 떡을 조금 샀다. 그리고 나서 교황청 대사관으로 향했다. 광화문에 들렸을 때 여느 때처럼 세종대왕상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묵념을 하고 나서 청와대 입구의 길목에 있는 작은 가게(세종 슈퍼)에서 음료수와 달콤한 과자 몇 개를 사서 그것을 들고 나서 청와대 방면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전경들이나 사복경찰들이 나를 잡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나에게 "교황청대사관으로 가시는 길이군요!" 하고 웃으며 질문까지 하며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거의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청와대 옆에 있는 교황청 대사관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하는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짧게 "내방객입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였다. 정문이 열리고 챌시오 집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사 챌시오님은 나와는 잘 아는 사이에였다. 그와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교황대사님께 꾸중을 많이 들었습니다. 당신도 가난하실 텐데 무슨 선물을 살 돈이 있어서 그런 분께 선물을 받았느냐고 말입니다...!" 나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것이니 걱정하시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들에게 축복의 인사와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 후 대사관 밖으로 나왔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 앞을 가득 메우고 잇었다. 나는 그 앞 벤치에서 청와대 쪽을 바라다 보며 기도를 올렸다. 서서 한 번 앉아서 두 번,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들과 경제인들을 위한 기도였다. 당시의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나는 당시의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 곳에서 나는 몸을 일으켜 나는 걸어서 다시 광화문 쪽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에 묵념을 하고 걸어서 시청까지 가서 다시금 명동에 들렸다. 그리고 명동성당에서 저녁 특전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화성시로 돌아왔다. 병점역에서 버스를 타며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여전히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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