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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동생들이 일찍 집을 나갔다. 막노동(흔히 말해서 노가다라는 말에 더 익숙할 것이라고 본다)을 하는 아이들이라서 더욱 시간에 신경을 쓰나 보다. 지금쯤 서울 어느 곳, 아니면 천안이나 시흥 정도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늦게 일어 나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 국을 덥히고 반찬을 꺼내서 대충 식사를 하고 우선 구의동성당으로 향했다 2월 교무금과 3월 교무ㅜ금 1만원씩이 밀려 있어서 우선 2월 것만을 내기로 하고 편지를 살 수 있으면 사서 주임신부님께 편지를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성체조배나 십자가의 길을 할 생각이었으나 성당에 도착하자 마자 수녀님과 신부님을 뵐 수 있었다. 그것도 당사자인 주임신부님을 말이다. 나는 구의동성당에서 부활판공을 하지 못하였다. 대신 3월 8일 명동에서 시간을 내어 판공성사를 볼 수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서 신부님께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매일미사도 드릴 수가 없었고 사순특강이나 감사헌금을 내기에도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정을 편지로 말씀드리고 나서 양해를 구하려고 하였는데 정작 그분을 뵙고 그 말씀을 드리고자 했더디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내 나이 마흔여섯, 어느덧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천국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나의 신앙생활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97년 나는 IMF와 같은 사태가 올 것을 직감하고 다니던 회사를 사표내고 서울로 올라와서 명동성당에서 예비자교리를 받으며 전교생활과 캠페인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어 나는 다시금 경기도 화성에 있는 나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나느 누님과 말다툼을 심하게 하고 집을 나온 상태였다. 신부님은 가족들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병점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 무렵 바티칸에서 축하의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전교와 캠페인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마음의 부담이 너무 심하여 입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병명은 조울증, 나로서도 아마 그 때 나의 상태가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가는 이야기이다. 그 뒤로 명동과 본당을 오가며 열심히 개인적 봉사, 단체적 봉사를 계속하였다. 그래서 여기에 실려 있는 편지는 그 때의 나를 응원하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다시 집을 나가고 쓰러지고 입원하고, 그렇게 하여서 나는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글을 남기고 있다. 남들이 묻는다. 어째서 그런 편지를 받고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 되엇느냐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이야기한다. 긴 이야기는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와 세상에 약간의 공로가 있어 그런 것입니다. 물론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적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 괜히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흐를 우려가 있으니까 말이다.
오해도 많이 받았다. 남들은 내가 대단한 부자인 줄 알았나 보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집안형편에 대해서는 아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집도 두 채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에 내가 차상위계층이고 장애인이라고 해서 국가로부터 임대받은 소박한 작은 나의 아파트와 지금 동생들이 마련하여 줘서 살고 잇는 전월세 반지하집이 그것이다. 그리고 나는 병원을 다녀도 거의 진료비를 내지 않고 (차상위의료보호1종이라서) 전철비도 장애인이라서 내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교통비는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여 그들에게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하지도 않는다. 어떤 이는 내가 누님들과 같이 살고 있다고 했더니 내가 첩을 두었다는 이야기로 들렸는지 아내가 둘이냐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우스운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고 지금은 여러 사람들과 같이 교회의 일웜으로 당당히 생활하고 있다. 나는 명동성당의 장년분과위원회 소속의 평신도사도직 단체인 녹암회의 총무를 햇수로 4년을 했고 지금은 구의동이 본당이지만 그 단체의 명예총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명동본당의 제1꾸리아의 한 쁘레시디움의 서기와 회계를 한 적이 있고 지금은 협조단원이며 한 가지 더 자기자랑을 한다면 청와대 근교에 있는 교황청대사관에 일곱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고 그 곳의 사람들과 가끔씩 전화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하나인 성인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도 깊은 영적인 교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그 글을 실은 것이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실린 글을 다 읽는다고 해도 나의 지금까지의 삶과 그리고 경험, 그리고 교회에 대한 사람을 다 이애하기가 힘들 것이다. 원래 나는 감리교목사가 되려고 했던 적이 있었고 신학과정을 밟으려 총신대까지 다녀 온 적도 있으며 지금도 개신교(자신들이 기독교라고 이야기하는)의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며 페이스북 친구로서는 스님들이나 개신교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 배다해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이 지금껏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또 은총만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어려운 시기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가 나와 함께 해 주셨다는 것을 나도 다른 사람들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가 않다는 것이다. 하긴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 능력이나 인품이나 언변에서 그렇게 뛰어나다고 느끼지 않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만족하며 살고 있으며 자주 나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고 반성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을 따름이다.
여러분들이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었으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지금 교회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곧 부활시기가 되면 또 다른 은총으로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이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는 그런 사람들에게 머문다는 사실을 기억들 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는다는 것은 그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과 마음, 행동을 본받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기원하며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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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사순제5주일을 하루 앞두고
또는 개신교의 오순절 기간에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에서
블로그 주인 윤승환 사도요한(Yhun Sung-Whan Ap. John 또는 Giovanni Sung-Whan YHUN)이 전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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