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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1997년, 그리고 2008년나의 이야기 2015. 9. 25. 11:41
그 당시 나는 한보그룹의 비서실 경영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회사가 부도가 나서 제법 큰 대기업이 뿌리채부터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법정관리에 들어 가 있었기에 월급은 그대로 나왔고 그 정도 월급이면 그런대로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기에 저는 경제신문이나 일간지에 독자투고를 하는 등 시간을 그런대로 잘 쓰며 소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한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에 대하여는 회의적이었습니다. 특히나 원-달러 환율이 자꾸 상승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졌고 이러한 제 자신의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엉뚱한 사람으로 몰려서 당진에 있는 한보철강 제철소로 좌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전교도 하며 나름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고민을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전교(전도라고도 하지요)는 1996년 가을부터 시작을 했고 서울지역의 당시 대부분의 지하철역을 돌며 사람들에게 명동성당에서 산 성화카드(아기천사들이 그려져 있는)를 나누어 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다닐 것을 권했습니다. 당시에는 성화카드가 한 장에 50원이었고 다량으로 구매가 가능했으며 저는 그 뒤에 성서의 말씀과 삶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글귀들을 적으며 사람들에게 그것을 책갈피로 쓸 것을 권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국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동료들과 상사의 조언을 뿌리치고 사직계를 제출하고 나서 서울로 가서 명동성당고백실에 가서 고백할 것이 있노라고 신부님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천주교신자가 아니며 비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외국신부님은 맨발로 뛰어 나오며 저에게 가톨릭에 개종할 뜻이 있는가를 물으셨고 저는 즉석에서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전에 독립문역 근청에 있는 감리교신학대학에 들려서 목사가 되는 길을 알아 보기도 했고 총신대까지 말그대로 산넘고물건너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천주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예비신자교육을 받고 나서도 계속 나는 전교와 캠페인을 시작한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와 세상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그 모든 것은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황금만능주의와 물신풍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전단지와 팜플렛을 돌려 가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집에서 나온 저는 당시 서강대 앞의 한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냈고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대전, 인천, 화성, 수원, 나중에는 전주까지 내려가서 전교와 캠패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형제횔르 찾아가서 내가 수도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가를 묻고 입회를 바란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저의 열정에 놀라며 3년만 시간을 더 들인 후에 찾아와 달라고 이야기하였고 저는 대신 서강대학교에 있었던 바로 생긴 수도자대학원 1년 코스를 지원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서강대학교에 신학대학원이 없었기에 그 뒤의 일들을 예상하여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생가하기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조달할 생각이었는데 그 길이 어렵고 또 협조를 받지 못하여 저는 고민에 빠졌고 지니고 있던 돈 1천만원을 다 쓰고 카드빚까지 지게 되어서 결국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저는 교회의 분들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그분들은 가족과 화해한 뒤 집으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명동에서 예비신자교육을 받던 저는 화성시 병점성당으로 내려와서 다시금 예비신자교육을 받게 되었고 전교도 캠패인도 직장을 다니면서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중에 심신이 지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의사는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 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수치스럽게도 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어 국가부도사태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 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성당생활과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명동에 자주 들리는 한편 그 곳에서 개인적, 단체적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의 리면브라더스 사태가 올 즈음 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제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아울러 성장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주식시장만이 호황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사태가 안 좋아질 것을 직감하고 사금융에서 돈을 융통한 후 다시금 캠패인을 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저는 결국 좌절을 하게 되었고 고민에 빠진 나머지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였고 결국 경제위기가 세상을 휩쓸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저는 그 때의 일들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저의 정신건강의학과의 소견서에 실려 있었던 것이고 그 뒤에도 제가 이상하게도 그러한 위기를 예견하거나 대책이 어떻게 마련이 되어야 하는가를 직감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모두 다 주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께 항상 세상의 일들을 그저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들로 바라보지만 마시고 왜 그럴까 하는 탐구정신과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을 막을 수 있을까,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표징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별을 모고 가는 사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참희망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너무 길게 이야기한 것 같아서 이 쯤에서 맺기로 하고 여러분들이 즐거운 추석명절, 즉 한가위를 보내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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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5일 금요일 아침에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에서
블로그 주인 윤승환 사도 요한(Yhun Sung-Whan Ap. John 또는 Giovanni Sung-Whan YHUN)이 전하여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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