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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던 연세대학교-1996년 가슴아픈 일들나의 이야기 2016. 2. 28. 13:36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개신교의 신자로서 전도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일단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님의 죽음이 잊혀져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7급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신촌에도 자주 들러서 나의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 때 꽤 잘나가던 술집이 있었다. 사실 그 술짐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지금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나 나와 크게 나이가 차이나지 않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술집 [괜찮아요]라는 술집이었고 당시 나는 여유돈이 약간 있어서 교회의 일과 시험준비를 병행하며 그 곳의 자리를 잡고 낮의 시간에 맥주를 마시러 가고는 했다. 그 술집은 체인점이었고 신촌의 거리에 그 곳이 있었고 당시에 나는 잘 알아주는 단골이었다.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으나 학생운동의 불길은 여전히 사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었던 연세대의 교정에는 자주 집회가 열렸고 나는 가끔씩 그 곳의 집회에 가서 구경을 하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변화를 갈구하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끔 되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란 단체를 7080세대들은 다 알고 계실 것이다. 전대협이라고 불리던 이 세력은 나중에 한총련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보다 조직적으로 민족의 해방과 통일을 위하여 전략을 짜고 이른 바 과거의 나처럼 의식화된(이 말은 좋은 뜻과 나쁜 뜻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학생들과 지식인들을 상대로 점점 세력을 넓혀 갔다. 그러한 조직은 상당한 물리력까지 동원할 수 있었고 무능해 보이는 정부에 대하여 격렬하게 정책의 노선을 바꿀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 갔다. 그러다가 드디어 연세대학교에서 집회를 열고 해방구를 설정한 후 점거농성에 들어 갔다. 나는 그 때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전경들이 나에게까지 불심검문을 하고 대학구내에서 진입하는 것을 통제하였으나 나는 이미 그런 폭력적인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그렇게 과거에도 심하게 폭력짐회에 참가한 전력이 없었고 단지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런 식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려고 가던 순수한 동기가 있었고 당시의 학교에는 은사님들과 나의 동료로서 대학원에 다니거나 조교로서 일하던 사람들, 이를 들어 이영범 학형과 같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나를 저지할 명분도 없었다. 사태는 매우 심각했다. 학생들이 머리끈을 동여 메고 몽둥이로 무장한 채 무기를 들고 적을 겨냥하듯이 검술연습을 펼치고 있는 모습에 나는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을 예상하였다. 드디어,,,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었고 헬리콥터가 건물 옥상 위에서 최루액을 흩뿌려가며 학생들을 해산하려고 하였다. 햑생들은 맨몸으로 맞섰다. 국회나 정부에서도 시위를 진압하지 못하는 경찰의 행태, 공권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고 여당은 이를 지적하여 정국은 앞길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경찰의 수뇌부는 진압작전을 개시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지니고 있던 온갖 방어수단으로 하긴 자위적인 차원이었다고 말하지만 경찰에 맞섰다. 경찰은 이미 그 사태를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인지 거칠게 학생운동가들을 몰아 붙였고 학생들은 결국 종합관과 인문관에 기름을 붙고 불을 질렀다. 그 건물은 나중에도 불에 그을린 채 폐허로 남아 있었고 학교 측은 본보기의 차원으로 꽤 오랜 시간 그 두 건물을 출입통제를 하며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철조망을 치고 보존하였다. 나로서는 그 때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세브란스 병원 쪽에서 헬기가 최루액을 뿌리며 농성 중인 학생들을 진압하려는 광경을 보고 학생들이 저항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손으로 손짓을 하여 어서 내려 오라고 수신호를 했다. 그리고 자주 찾아가서 상황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학생운동가들은 나중에 김영삼 정부로부터 준엄한,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조금은 심한 처벌을 받았다.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은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나도 그 기사를 읽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몇 년 동안 일이 있어서 연세대학교를 방문할 때 마다 인문관과 종합관 앞의 철책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였던 생각이 떠 오른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곳은 더 이상 폐허나 기념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요즘도 그 때 내가 보여 주었던 힘과 용기가 어디에서 난 것인가를 생각하고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마음 속으로) 그 자리를 지날 때 마다 하고는 한다.
형제, 자매 여러분들...! 얼마 전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났다. 그 때의 심정은 내가 그 책을 일고 영화를 보았을 때 대수도원의 장서각에서 시작된 불이 수도원 전체를 집어 삼키며 종말의 악한 기운이 다가왔음을 상기시켜 주는 대목이 있다. 나는 그 때 그 아픈 추억을 생각해 내며 한숨을 지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은총의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무도 그 때의 일을 기억하거나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과도한 세상에 대한 변화의 욕구가, 때로는 전통의 지나친 고수에 대한 의지가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악한 일에 끌어들일 수 있음을 기억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 그 때의 일처럼, 그 책의 내용처럼 모든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가 있다. 주님의 평화를 빌며 담담한 심정으로 이 글을 마친다. 그리고 그 때의 관계자분들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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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8일 사순제3주일의 오후에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의 한 PC방에서
블로그 주인 윤승환 사도 요한(Yhun Sung-Whan Ap. John 또는 Giovanni Sung-Whan YHUN)이 적었습니다...!
추가 : 그 때의 일은 마치 어제의 기억처럼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통하여 과연 현재의 자신의 독선과 고집을 해결하지는 못하는 것일까요...? 역시 담담한 마음으로 이 후기를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