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정의란 이름으로...
    나의 이야기 2016. 4. 23. 10:32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고 저도 그 글을 여러 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들 하십니까...?한자로서 정의는 正義로 쓰면 말 그대로 바르고 의로움을 말합니다. 그러면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확실히 말할 수가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요...?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의란 이름으로 수많은 일들을 해 왔고 그 중에는 올바른 일들도 많았고 그렇지못한 일들도 적지가 않았습니다. 상대적 정의와 절대적 정의는 여기서 따로 논하지 않겠습니다.왜냐 하면 그렇게 되면 가치의 혼란이 오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법도 초월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정의가 있는 법이며 반대로 정의란 상황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이갸기에는 상대적인 가치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상대적 정의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옛날에 도척이라는 아주 간이 크고 겁이 없는 도적의 괴수가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겁을 내었고 심지어 관군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세력이 대단하였습니다. 그 말을 전하여 들은 공자는 그를 달래어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볼 요량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도와 의를 설명하였으며 인과 예를 가질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척은 공자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그 앞에서 사람의 생간을 잘라다가 회를 쳐서 먹으며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공자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하였다고 제자들의 입과 세상사람들의풍문으로 전하여 집니다. 반면에 인과 의,그리고 예를 가르치던 공자는 각나라로부터 군주와 신하를 성가시게 하고 백성을 들뜨게하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고 배척당하는 신세가 되었고 공자의 제자들 조차 공자에게 "스승의 도가 너무 어려우니 세상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러는 것입니다...!"라는 볼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공자는 자신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인간됨의 도리를 가르친 것뿐이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그러면 도척에게는 정의가 없었고 공자와 제자들에게만 정의가 있었으며 공자를 배척했던 군주들과 신하들, 그들에게는 정의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실 비슷한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자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법을 어지럽히고 나라의 신들을 배척하고 전혀 다른 신을 믿게 하였다는 당치않은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되었습니다.사람들이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을 권하자 소크라테스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독배를 마시고 조용히 걸으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면 정의는 그 개념이 소크라테스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에게 죽음을 안겨준 아테네의 다른 지식인들에게는 그러한 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일까요...? 저도 가톨릭신자이며 그리스도인이기는 합니다만 소크라테스는 그런 경우에 정치적, 철학적인 갈들과 대립이 있어서 참신한 가르침에 놀란 다른 지식인들과 사회의 지도층들이 그러한 가르침에 대하여 반감을 가졌기에 그랬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아들이고 사람의 아들이었던 예수는 어째서 모진 박해와 경원시, 그리고 갖가지 시험과 시련을 겪었으며 수난을 겪고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던 것일까요...? 바리사이인들과 사두가이, 율법교사들과 수석사제들과 대사제, 그리고 빌라도에게는 헤로데에게는 정의란 말이 전혀 낯설은 개념이었던 것일까요...?우리는 이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고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다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신의 정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란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저의는 절대적이기도 하며 상대적이기도 하는 것이기에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결국 여러분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것이 신변의 안전이나 생명과 재산의위협을 불러오는 것이나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통째로 희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지언정 결코 그러한 생각이 왜 생겨 났으며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살피지 않고는 그런 상대방의 정의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나 비판을 함부로 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는 잘못된 것은 소통과 대화의 부재요, 그리고 결국 이해관게의 어긋남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자세를 가지도록 하십시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