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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체험 20.-불타던 연세대학교나의 이야기 2017. 8. 27. 22:38
당시에는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량진 고시촌에 있는 고시학원에서 7급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세상일에 짜증을 내고 있었고 나의 앞날에 대한 불안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마음이 산란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그 때는 지금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겪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공무원시험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 당시의 현실에 대한 자기 도피로써 여겨질 정도로 제 자신이 아직은 사회 문제에 대하여 깨엉있었던 모양입니다. 낮시간에 나는 신촌에 가서 "괜찮아요"라는 이름의 맥주전문점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학교에 들려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은사인 이은국 교수님 연구실에 들려서 당시 조교로 있었던 이영범 학형과도 이야기를 하는 등 바쁘게 보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우리나라 학생운동이 진보적 운동에서 마지막으로 한 때의 기운을 발휘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와의 사이에서 많은 충돌을 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학생들의 시위와 집회에 대하여 강경일변도로 대했고 당시에 우리나라 학생운동을 이끌고 있던 한총련과, 정부는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었으며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날카로운 시각차를 보여서 대학생들의 시위와 집회로 신촌의 로타리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가운데 드디어 터질 일이 터졌습니다.
1996년 한총련의 지도부는 자신들의 전력을 연세대학교와 신촌 등에 집결시켰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하고 연세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그들의 시도가 좌절되자 마침내 연세대학교의 교내를 점령하고 장기전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정부에게 통일정책과 학생운동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정부 대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서 결국 일촉즉발의 사태에 까지 돌입하였습니다. 그러던 시기에 나는 신촌 로타리에서 그러한 움직임을 지켜 보게 됩니다.
어느 날 연세대학교를 걷던 나는 대학교 건물에 있는 이은국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아가다가 검문을 받게 됩니다. 나는 당시 사정을 설명하고 내가 대학생이 아니며 단지 학교에 있는 은사님과 동료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고 풀려 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사회과학대학의 건물로 다가가다가 일단의 무력시위를 준비하고 있던 학생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들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메고 곤봉을 만들어서 마치 검도를 하는 것처럼 오가며 경찰과 대치상황을 가정하고 시위와 싸움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파국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저는 연세대학교 과학관과 그 밖의 건물에서 경찰이 최루액을 뿌리며 강경진압을 시도하던 중 많은 학생들이 부상을 당하고 학생들이 결국 더 심각한 방법으로 경찰에 저항하기 위하여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니, 직접 보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는 마음에 세브란스 병원 쪽에서 그러한 진행상황을 보았던 것입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들을 향하여 손짓을 하였습니다. 빨리 내려오라는 뜻에서 손을 위아래로 움직여 가며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최루액을 뿌리며 학생들의 과격한 일부 시위자들을 저지하는 것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나는 연세대학교가 불길에 휩싸였다는 소리를 뉴스와 신문에서 접했습니다. 경찰이 학생들이 최후까지 저항하던 종합관과 인문관의 건물에 진입하자 일부 학생들이 불을 질렀고 그에 따라서 연세대학교의 두 건물과 대학구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사진에는 건물 옥사에 모인 학생들을 주저앉게 하고 무전을 주고 받으며 감시하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저얹은 학생들은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가 본 그 곳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온통 불탄 자국의 건물들과 그 곳 앞의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널려 있는 모습, 그리고 낙서와 그 밖의 모습은 그 곳이 배움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끔 만들기 충분하였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도 그 다음 번에도 그 곳을 지나갈 땐는 그 앞에 멈춰 서서 꼭 그 곳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그 이후에도 당분간 폐허로 보존되어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한 전시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기에 적는 것은 그러한 사실과 폭력의 무서움, 그리고 민주주의 사횡서 왜 절차와 방법이 중요시되어야 하는가를 여러분들께 예시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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