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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을 관두고-1997년 4월내지 5월
    나의 이야기 2017. 12. 4. 11:46

    나는 결국 본사의 직원들에게 밉보여 당진의 한보철강제철소로 좌천되었다. 나의 이야기가 여기서 사실 시작된다. 나는 서울에 들려서 명동성당에서 성화(당시 돈으로 장당 50원 하던)를 잔뜩 구입하여 전교에 썼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교와 캠페인에 나섰다. 그 때에 나는 직장을 관들 것을 생각하고 기지시를 출발하였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주식과 그 밖의 돈을 찾아 LG카드를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집안 식구들과의 대립은 불가피했다. 나는 집을 나왔다. 그리고 서강대 앞의 고시촌으로 가서 거처를 정하고 서울의 독립문 근처의 감리교신학대학에 가서 내가 목회자가 될 수 있는가를 알아 보았다. 가능했다. 그리고 다시 확증을 얻기 위하여 총신대입구 이수역 근처에서 내려서 총신대까지 가기로 하였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가까스로 길을, 잘못들었기에,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간 그 곳에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천주교신자가 되기로 다시금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예비신자이긴 하지만 그 사이에 아침과 저녁의 결산을 명동성당에서 하기로 하고 여러 곳에서 전교와 캠페인을 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할까? 나는 어느 곳에서 사기나 다름이 없는 어려운 일을 당하였다. 물론 내 잘못도 컸다. 그래서 나는 가진 돈 1,000만원을 드쓰고 주식을 판 돈 그리고 카드빚까지 떠 앉은 후 고민에 빠졌다. 예비신자의 신분이기에 고백성사를 한다든가 신부님께 도움을 청하기가 좀 그랬다. 결국 신앙의 선배들과 이야기를 오래 나눴고 그분들은 가족들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그 전에 프란치스칸 수도원에 가서 겪었던 이들이 생각이 난다. 예비신자등록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정동의 작은형제회를 찾았다. 그리고 내가 작은형제회에 입회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상담자인 수사는 놀라서 아직 예비신자이고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3년만 더 기다려 줄 수가 있겠느냐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몹시 실망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 때도 같은 소리를 하겠느냐고... 어쨌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빚을 갚으며 캠페인을 지속했다. 내려 갈 기회가 있어 내려 간  곳이 전주, 그 곳에서도 여전히 그 일에 몰두하였다. 걸다가 건강에 이상이 왔다. 결국 나머지돈 80만원은 누님들이 갚아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원광대학교 익산제2병원에 입원하여 잠시 쉬게 되었으나 그 안에서 미사를 못보는 것이 아쉬워 같이 입원하여 있던 개신교전도사와 같이 성서와 찬송가책을 구해 거기서 예배의 형식으로 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퇴원, 나는 거의 몇 개월을 성당에 가기에는 너무 아파서 미사를 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교회는 나의 공로를 인정한 모양이다. 자매님들과 신부님이 찾아와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재활치료도 맏고 다시 성당에도 나갈 수가 있었다. 아파서 성당에 가지 못했다는 말에 윤민재 베드로 신부님은 무죄하다고 선언을 해 주셨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지금까지 다시 병점성당, 안녕성당, 지금의 동탄숲속성당, 그리고 서울의 명동성당에 가서 다시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봉사를 하였다. 그 사에에 요한 바오로 2세는 편지로 나의 세례를 축하하여 주었고 나는 그 뒤에도 두 통의 편지를 더 받았다. 그는 진정 나의 행적과 내가 흘린 피와 땀과 고통의 눈물을 알았던 모양이어서 자주 내 걱정을 하였던 것 같다. 견진은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명동에서 받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봉사에 전념하였다. 성시대 모세를 사귄 것도 그 때였고 녹암회에 가입한 것도 그 때이며 지금껏 한 10년이 넘게 봉사를 하였다. 얼마 전에는 총무로서도 다시 선출되었다. 그 사이에 나와 교황청, 그리고 교황청대사관, 그리고 한국의 성직자분들 사이에는 많은 글들이 오갔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신비를 체험을 하였다. 아니 이상한 일들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여기에 적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과 반성을 동시에 한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왜 그런 순간에 그런 결정을 하였고 그것이 들어 맞고 그런 결과와 더불어 이상한 일들이 생기게 되었을까...? 그래서 나는 그것을 감히 신비라고 부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이 이야기를 앞으로도 미완의 이야기로 끝맺는다. 아니, 계속 이어질 것이기에 끝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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