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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의 이야기 2016. 5. 21. 10:07

      당시에 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서울의 동생집에 머물며 경기도 화성시 병점2동주민센터까지 출퇴근하면서 공공근로로서 현장기동단의 일이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였고 나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하였다. 전철로써도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고 늦어도 여덟시 반까지는 가야 했기에 매우 힘이 들었다. 그리고 하는 일이 좀 그렇고 그런 일이라서 골목 골목 쌓인 쓰레기와 담배꽁초, 그리고 오물과 재활용쓰레기 등을 담아 치우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 세월호참사가 터졌다. 그래서 나는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면서 병점역분향소에서 거의 매일 묵념하고 헌화하며 그 날 그날의 느낌대로 글을 적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하였다. 공공근로 2기가 끝날 무렵 나는 본당의 명동성당에서 교황의 시복식 행사와 미사에 참석할 표가 배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 세월호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와 진도 팽목항에 들리지도 못했으면서 무슨 낯으로 교황을 뵙고 교황의 시복식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입고 갈 마땅한 양복도 없었고 정장 비슷한 옷도 없었으며 나의 건강 상태도 좋지 못했다. 동생들은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나를 만류했고 나는 거의 매일 오전 근무가 여유 있을 때 묵주기도를 하며 교황의 한국방문이 잘 성사되고 끝나기를 바랬고 나의 휴대전화기에 있는 교황청대사관의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 교황께서 잘 다녀 가시고 준비의 상황이 잘 되고 있는지를 목멘 소리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결단의 시각이 왔다. 나는 드디어 참석하지 않기로 하고 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녹암회 회장인 황우진 토마스 아퀴나스 회장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생각해 보라 구더기와 똥,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와 전단지를 치우던 몸으로 교황을 대할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황께서 도착하기 3일 전 쯤 교황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를 하였다. "찬미 예수님, 교황청대사관입니까...?" "네, 형제님! 반갑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교황님을 뵈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 잠시 침묵이 흐르고 저쪽에서 답신이 들려 왔다. "네, 알겠습니다. 형제님, 이해합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 성하께서 도착하시기 전까지 저는 매일 전화를 했습니다.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교황께서 도착하시는 날에는 저는 전화를 못할 것입니다. 잘 다녀 가시라고 이야기를 전하여 주십시오...!" 

      그 전 나는 그 주의 주일에 광화문에 들려서 준비상황을 지켜 보았다. 모든 준비를 잘 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나는 그 날 교황께서 오후에 오시기로 한 날 교황청대사관에 전화를 하였다. "아이고,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하시겠다면서요...?" "방금 묵주기도를 마쳤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빌며 모든 일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는 교황의 방한 다음날에도 전화를 걸었다. 교황께서는 교황청대사관을 숙소를 쓰셨기에 전화가 불통인 듯했다. 그래서 그냥 끊었다. 그리고 시복식 당일날 나는 근처의 PC방에서 평화방송을 연결하였다. 로그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시복식과 그 전후 행사가 중계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교황이 입장하는 것과 손을 흔드는 모습, 그리고 악수하는 모습,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모습 등을 지켜 보았고 시복식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나서 기도를 마치고 PC방을 나왔다.

      그 뒤 나는 어느 날 누님이 나에게 질문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광화문에 안 갔어...? 갈 수 있었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을 뵈었잖아...?"  나는 고개를 돌리고 나서 말했다. "누님아, 내가 추기경이야 주교야 아니면 몬시뇰이야 아니면 사제야? 나는 그저 발바닥신자인 평신도일 뿐이야...! 나는 내가 가면 쓰러져서 무슨 일이 날까 봐 안 갔던 거야...! 그리고 교황님이 잘 지내시다가 가셨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누님은 "아이고...!"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 나는 편지를 써서 죄송함과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그 뒤 바티칸에서 편지가 왔다. 교황께서 "당신의 지향대로 기도하겠습니다."하고 비서관이 보낸 편지로서 이 블로그에 나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 않았던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광화문에 갔다가 말로 듣던 기념판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무릎을 꿇고 말이다. 그 표판은 시복식이 행해졌고 그 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라틴어와 영어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청와대 근처에 있는 교황청대사관에 전화를 하였다. "광화문입니다. 방금 시복식 기념표지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와 더불어 지상의 순례자로서 언제나 당당하게 저의 신앙을 유지해 나가겠습니다. 기도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받은 분은 굵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네, 수고하십시오...!" 나는 전화를 끊고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예전처럼 묵념을 한 후 조용히 장애인단체와 세월호기념단체의 천막에 들려서 서명하고 헌화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추가 : 여기에 기록된 나의 이야기에 대하여는 많은 비판과 응원과 뒷이야기들이 있을 것임을 인정합니다.



    2016년 5월 21일 토요일 연중시기에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성당 근처의 한 PC방에서

    블로그 주인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2019년 7월 18일 수정하여 고쳐 적음.

     윤승환 요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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