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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웠던 해들...
    나의 이야기 2016. 7. 1. 11:33

    1996년 어머니가 급서하셨습니다.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남들에게는 저의 심정을 이해하고 아는 형제인 정동운 형제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그 사실을 알리고 내 나름대로 슬픔을 승화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막노동을 하든가 아니면 알바로 돈을 벌어서 7급공무원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가 없어서 잠시 방황 아닌 방황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96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자 전도가방을 사서 서울지역 지하철 입구에서 전교에 나섰습니다. 쵸코파이와 사탕, 껌과 쵸콜릿을 준비하여 제가 직접 제작하고 만든 작은 쪽지를 인쇄하여 그것을 나누어주며 서울시내의 지하철역을 오가며 입구에서 그것을 나누어 주며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한 달 후 저는 취업을 다시 하게 되었고 이제는 보다 경제적 여유가 생겼으니 다른 방법을 택하여 보자고 생각하여 명동성당을 찾았습니다. 당시에는 명동성당 성물방에서는 성화카드를 팔고 있었는데 그 중 아기천사들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 장당 50원 하는 그 성화카드를 많이 준비하여 출쾨근시절 그것들을 나누어 주며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십시오!"라든가 성서의 복음말씀을 적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IMF사태가 찾아오기 전이었기에 저는 회사에 근무를 하면서 (당시 저의 회사는 대치동에 있는 한보그룹 경영기획팀이었고 곧 회사가 부도가 나서 저는 비교적 많은 자유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기에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습니다) 전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지방으로 내려 가게 되었고 충청도에 있는 당진제철소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숙소인 기지시에서 회사까지 통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도 전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형제들과 편지를 주고 받고 누님들에게도 연락을 하면서 그 안에서 저의 소임과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어느 날 제가 우려했던 경제위기가 닥쳐올 것을 예감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와서 본격적인 전도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그것을 막아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 문렵 저는 기족들과 크게 불화가 생기게 되었고 저는 저의 짐을 꾸려 서울에 올라와서 서강대 근처의 작은 고시촌에서 고시원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 이전 저는 제가 목회자가 될 수가 있나 알아보기 위하여 총신대나 감리교신학대학원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가 먼저 회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톨릭으로 저의 종교를 바꾸게 되었고 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 (당시에는 신학대학이 없었기에) 1년 과정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알바를 하며 G모 어학원에서 일본어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번역일로 돈을 모아서 대학원을 다니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사기나 다름이 없는 일을 당하였고 그 동안 수도권을 돌며 전교하고 캠페인하던 일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신앙의 선배와 상의를 하였고 그분은 가족들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가졌던 꽤 많은 돈은 전교비용과 식비와 교통비, 그리고 이웃을 돕는 데 다 써 버렸고 저는 집으로 돌아와서 병점 근처의 한국 탕가로이라는 회사에 취업하면서 돈을 갚아 나갔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서울, 인천, 그리고 오산, 수원, 대전, 전주까지 내려 갔었고 그 사이에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는 누님들은 걱정이 앞섰던 모양입니다. 저는 누님들의 권유로 익산에 있는 원광 제2병원에 입원하였고 조울증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다행히 누님들이 걱정했던 종교망상이나 과대망상은 아니었고 잠시 신앙을 쉬면서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병점성당의 교우들이 따뜻한 손길로 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저는 투약치료와 재활치료에 성공하여 그나마 다시 일을 하게 되었고 성당의 일도 다시금 시작하였으나 조용히 하게 되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제가 다시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는 앞서 전하여 드렸던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은 가설무대가 서 있는 병점역광장에서 다시금 전교와 봉사로 1년 가까운 시간을 쓰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그 이 전에도 그런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 봉사와 성당 내의 단체봉사도 자주 하였고 현재 명동성당 녹암회의 총무로서 햇수로 11년을 봉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입증을 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병원기록에도 남아 있으니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교시절 1988년 겨울부터 시작한 전교와 (전도와) 기도와 봉사와 편지 쓰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제는 전교는 쉬며 직장에서 교회(성당)에서 꾸준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는 지금도 그 뜨거웠던 날들과 계절, 시렸던 순간과 해들을 기억합니다. 여러분들께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항상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함께 하고 있으심을 잊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여러분,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바, 주님은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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