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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백남기 어르신은...나의 이야기 2016. 10. 29. 14:06
아침에 동생들에게 외출하겠다고 하고 옷을 따뜻하게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구의역에서 전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내려서 환승하여 혜화역으로 갔다.
혜화역 3번 출구,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길이 있는 곳이다.
의외로 조용했다.
나는 이 적막이 오늘 무슨 일이 있을 신호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한 노년의 신사를 만났다.
그는 두개의 나무판을 들고 서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세히 그것을 들여 보며 읽었다.
그가 조용히 말을 했다.
"다 맞는 말 아닙니까...?"
그는 말을 마치고 겸언쩍게 웃었다.
그리고 정면을 다시 바라 보았다.
두 명의 경찰이 제복을 입고 그 반대편에서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그 곳을 지나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들어 가서 한 아이에게 백남기 할아버지의 분향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그 아이는 "이 쪽 끝에 없으면 아무데도 없어요...!"하고 다소 미안한 듯 이야기를 했다.
나는 결국 다른 분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3층으로 갔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서명을 받는 곳에서 서명을 하고 연락처를 남겼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를 만나서 전후사정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분향, 십자성호를 긋고 나서 묵념을 먼저 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성호경을 바치고 주님의 기도와 영광송, 성모송을 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자유기도를 드렸다.
슬픔을 금할 길은 없었으나 울지는 않기로 하였기에 나는 일어서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왔는데 볼 수가 없어 섭섭한 심경을 달랬다.
옆에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기도문을 적었다.
아주 잘된 기도로 주님께 바치는 기도였고 고 백남기 농민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기도였다.
끝에 날자와 이름을 적었고 지켜 보는 형제님에게 고개를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한 청년이 이야기를 했다.
"오늘 시청앞에서, 아니 그 근처에서 모임이 있어요...! 오세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참석할 마음도 있어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경찰들이 여전히 그 앞에서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인사했다.
"수고들 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오니 여전히 일인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말했다. "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라가 혼란하여서야 무슨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진실은 전부 밝혀져야 하겠지만 한 눈을 감고 다른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하겠습니까...?"
옆에 있던 사람, 즉 어느 자매님도 거들었다. "저도 천주교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틈을 타서 북한이 쳐들어 오면 우리는 베트남처럼 거지가 되는 겁니다."
나는 그럴 일은 없다고 안심시켜 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내가 달고 있는 가방의 세월호 표지를 보고도 이제 그것을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며 볼멘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말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지금 걱정 중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 곳을 떠나서 정처없이 걸었다.
그리고 종로5가에서 전철을 타려고 했다. 그러다가 한 노숙자가 누워 있기에 잠시 살펴 본 후 자리를 떠나서 시청역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그리고 나서 시청역에서도 한 긴 의자에 누워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를 보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웃으며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인천을 가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 자리에서 그를 놓아주었다.
전철역에서 나오니 한창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쌀은 생명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 현명한 생산과 소비문화..." 여러 가지 깃발이 나부끼는 가운데 나는 을지로입구역으로 가서 흡연부스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걸어서 중앙우체국까지 가서 준비한 편지를 부쳤다. 그 편지는 두 분 교황 성하에게 이탈리아 지진의 피해를 위로하고 편지를 늦게 보내어 죄송하다는 이야기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님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라는 글, 그리고 이은국 교수님과 우리나라의 주교님들, 즉 염수정 추기경님과 조규만 주교님, 이용훈 주교님께 보내는 위문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명동성당에 들려서 교구청별관 앞에서 그 곳의 터줏대감 고양이를 만나서 껴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려서 인사를 드리고 나서 지하철역으로 걸어 갔다.
도중에 늘 그렇듯이 박장대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을 보고 나서 나도 웃었다.
그런데 그 사진의 얼굴이 오늘 본 백남기 농민, 즉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의 얼굴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고 다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랬다.
영정 속의 백남기 농민도 웃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뜻밖에도 늦게 들어와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집 근처의 구의동성당에 들려서 다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신부님은 만나지 못했지만 관리장님과 혼배 중인 사람들, 하객들과 아이들을 만나서 그들을 마음 속으로 축복하여 주었다. 그리고 여기 PC방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죽음과 생명, 수난과 부활이 어우러지는 하루였다. 날씨는 비록 차가왔으나 햇살을 제법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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